20세기 초 유럽 음악계는 조성 음악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음악적 언어를 절실히 필요로 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전환점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입니다. 그는 기존의 조성 중심 ( 즉 장조와 단조의 음계로 만들어지는 음악) 작곡 체계를 해체하고, 음악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방안으로 12음기법(Dodecaphony; Twelve-tone technique)을 창시했습니다. 이 기법은 현대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 원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며 현대 음악과 아방가르드 음악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혼란기 속 무조성과 체계화의 필요
쇤베르크가 활동하던 당시, 낭만주의 음악은 극단적인 감정 표현과 화성의 확장으로 인해 조성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었습니다. 바그너와 말러의 음악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쇤베르크는 조성 체계가 더 이상 창의적인 음악 작곡을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보았고, 대신 감정 표현보다는 구조적 질서와 통일성을 갖춘 새로운 음악 언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로 인해 쇤베르크는 무조 음악(atonal music)을 실험하게 되며, 조성 없이도 음악이 조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무조성은 자유로우면서도 비체계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를 보다 명확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정리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그 결과물이 12음기법입니다.
12음기법의 핵심 작동 방식
12음기법의 기본 원리는 옥타브 내에 존재하는 12개의 반음 각각을 동일한 비중으로 사용하는 데 있습니다. 작곡자는 먼저 12개의 음을 중복 없이 배열한 음열을 설정합니다. 이 음열은 곡 전체의 선율, 화성,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 뼈대가 됩니다.
이 음열은 4가지 기본 방식으로 변형될 수 있습니다: 원형(Prime), 전위(Inversion), 역행(Retrograde), 역행 전위(Retrograde Inversion). 또한 각 변형은 시작음을 다르게 하여 총 48개의 조합이 가능합니다. 이를 통해 작곡가는 매우 다양한 음악적 재료를 확보하면서도, 통일성과 구조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유로운 무조성보다 훨씬 고도의 조직력을 필요로 하는 방식입니다.
쇤베르크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조성이 없어도 음악이 논리적, 수학적 구조 안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이 기법은 이후 그의 제자인 베베른과 베르크를 통해 발전되었으며, 총렬주의(serialism)와 같은 현대 음악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쇤베르크의 미학과 작곡 철학
쇤베르크에게 있어 12음기법은 단순한 작곡 기법을 넘어서, 음악의 윤리적 재구성이었습니다. 쇤베르크 하면 이지적이고 냉철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예술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 또한 젊은 시절 누구보다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악 커리어 초기에는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음악에서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그는 음악이 감정의 배설이 아닌, 이성과 질서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음을 공정하게 사용한다는 발상은 음악의 민주성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나는 전통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음악이 고전 작곡가들의 구조적 정신을 계승한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바흐, 베토벤, 브람스의 정신을 20세기 언어로 재해석한 인물로서, 쇤베르크는 현대 음악사의 결정적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초기에는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적 구조의 엄격함, 창조적 실험정신, 이론적 완성도에서 높이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기법은 음악 대학의 작곡 커리큘럼에서 필수적으로 다뤄지며, 현대 예술음악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쇤베르크 플레이리스트
아래는 제가 뽑은 쇤베르크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입니다. 낭만주의 음악을 사랑하는 저로써는 솔직히 좀 듣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플레이리스트는 좀 짧습니다. 그래도 쇤베르크의 혁신적인 12음기법으로 쓰여진 음악이 어떤 것인지 호기심에 들어보시길 바라요!
- Schoenberg: Verklärte Nacht, Op.4
- Schoenberg: Piano Concerto Op. 42
- Schoenberg: Chamber Symphony No. 1, Op. 9